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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장례식 - 유교장례식 문상(조문)방법 등 정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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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장례식 - 유교장례식 문상(조문)방법 등 정리

티끌한톨 2020. 6. 25. 05:01

( 문상 방법은 아래쪽에 써 놓았습니다. )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 한참을 계셨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작년 연말부터 가족들 면회가 일절 금지였다.

 

건강상태가 악화되셔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단 한 번 가족면회가 허용되었지만 그마저도 유리창 너머로 얼굴만 보는 것이었다.

 

임종하시기 직전 2시간 정도, 아버지가 혼자 병실 안으로 들어가서 할머니 손을 조용히 잡고 있었던 게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 되었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좀 더 많은 가족들이 가서 할머니께 말을 걸고 손을 쓰다듬고 다리를 만지면서 보내드렸을 텐데...

 

외롭다고 느끼시진 않았을련지...

 

임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내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다른 친척들도 이미 와있었다.

서둘러 상복으로 갈아입고 할머니께 술잔 올리고 절을 한 후 빈소에 앉았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보니 부모님들은 부고 연락을 최소한으로 돌리셨다고 했다.

 

장례식 첫날은 오후부터 조문객이 띄엄띄엄 왔다.

 

발걸음 한 조문객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다 마치고 나갈 즈음 다른 조문객이 오시는 정도였다.

 

할아버지 장례식 때도 그랬지만... 임종하시는 순간을 보지 못하고 장례식장에 가면 실감이 잘 안 난다.

 

그래서 첫날은 울지 않았다. (심지어 장례식장 밥이 맛있어서 끼니때마다 밥 한가득씩 먹었다.) 

 

자정 넘어 새벽 2시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다들 장례식장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상복을 입은 채로 쪽잠을 잤다. (침대가 있는 가족 휴게실이 하나 제공되는데 멀리서 온 친척 가족을 거기서 묵게 했다.)

 

둘째 날 새벽 5시쯤에 눈이 떠져서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할머니 영정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휴대폰 만지기를 반복했다.

 

아침 7시에 할머니 아침상 올린다고 장례식장 직원이 왔고, 오전 11시에는 입관식이 진행되었다.

 

직원 안내에 따라 장소를 이동하여 입관식 하는 곳에 가니 살짝 서늘한 방 한가운데 관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관 속에는 눈을 감은 할머니가 누워계셨다.

 

단순히 눈만 감고 있었으면 그 또한 잠을 자는 것처럼 보여서 실감이 안 날 수 있는데... 입관식에 가보면 실제로는 고인의 콧구멍과 입에 하얀 솜 같은 것을 가득 채워놔서 결코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냥 보는 순간 확 실감이 든다.

 

진짜 돌아가셨구나... 

 

그제야 눈물이 솟구쳤다. 

 

장례식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장례식장은 입관식에서 고인의 몸을 만질 수 있게 해 줬다.

 

가족들이 차례차례 돌아가며 할머니의 몸을 쓰다듬고 이마에 손을 얹어 작별인사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할머니께 다가가 이마에 손을 가만히 대었는데 서늘하고 차가워서 울음이 터졌다.

 

다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계속 났다.

 

입관식이 끝나고 다시 빈소로 돌아가서도 한동안은 그칠만하면 또 눈물이 나고 그쳤다 다시 울고를 몇 번 반복했던 것 같다.

 

둘째 날은 전날 부고 소식을 들은 조문객들이 본격적으로 조문을 온다.

 

코로나19로 연락도 최소한으로 했고 연락을 받은 사람들도 조문을 최대한 자제했겠지만, 그래도 예상보다는 많은 분들이 조문을 와주셨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보니 상주들도 조문객들도 서로 누가 누군지 눈 모양만 보고 맞춰야 하는 웃픈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조문객이 많으면 보통 나 같은 손녀 손자들은 음식을 서빙하는 일에 투입되기 마련인데, 조문객 수가 많지 않아서 주방에 고용한 이모님 두 분만으로 충분했기에 나는 부모님들과 같이 빈소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오후에는 라마도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같이 빈소에 앉아 조문객이 오면 일어나서 맞이하고 인사하고 다시 자리에 앉고를 반복했다.

 

시간은 잘도 흘러가 어느새 밤이 되고 조문 오는 사람이 뜸해질 즈음 친인척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눴다.

 

이젠 명절도 제사도 거의 패스하고 사는 시대다 보니, 이렇게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이번이 거의 마지막일 거라며... 

 

둘째 날도 자정이 넘어 새벽이 되어서야 다들 잠에 들었고, 나는 셋째 날 아침에도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져서 그 이상 잠을 자지 못했다. 

 

빈소로 나와보니 아버지는 주무시지 않은 듯 피곤한 눈으로 빈소에 앉아계셨다.

 

향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지키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잠이 다 깼다고 말하면서 빈소에 앉으니까 그제야 아버지는 좀 쉬시러 밖에 나가셨다.

 

꽂아 놓은 향이 거의 다 타면 새 향에 불을 붙여 다시 꽂아놓기를 몇 번인가 반복하며 다른 가족들이 깰 때까지 빈소에 앉아있었다.

 

아침 7시가 되기 조금 전에 장례식장 직원이 할머니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 왔고, 친인척들도 모두 일어나 제를 올렸다.

 

발인은 오전 8시 반이었다.

 

화장시설이 같이 있는 장례식장이었기에 할머니의 관은 장례식장 직원들이 화장시설 쪽으로 미리 옮겨놓았고, 우리는 8시 반에 빈 유골함을 든 아버지와 할머니 영정사진을 든 아버지 아들을 선두로 줄을 서서 빈소를 떠나 바로 옆 건물인 화장시설로 이동했다.

 

화장을 진행하기 직전에 다시금 할머니의 관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확인시키며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 줬다.

 

관 위에 손을 얹고 할머니께 안녕히 가시라고 속으로 인사하는데 눈물이 또 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울고 나면 마스크가 축축해져서 계속 쓰고 있는 게 불편했다.

 

인사를 끝내고 나오니 유가족 대기실에서 전광판으로 화장 진행 상태와 남은 시간을 보여줬다.

 

장례식장 직원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유리벽으로 되어있어서 화장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관이 불타는 모습을 보고 통곡을 하다 실신하는 유가족들이 있어서 안 보이게 벽을 치고 전광판으로 글자만 보여주게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처럼 고인께서 오랫동안 병환으로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사고나 병으로 돌아가신 경우, 화장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상당히 고통스럽고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일 것이다...

 

할머니의 화장은 1시간 10분쯤 걸렸다. 

 

고인의 체구에 따라 1시간 20분~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체구도 작으시고 병상에 오래 계시면서 앙상해져서 화장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은 거라고 한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장소를 이동하자 유리창 너머로 화장이 끝나고 남아있는 할머니의 유골을 볼 수 있었다.

 

유골은 우리 눈 앞에서 직원이 빗자루로 쓸어 통에 담은 뒤 분쇄기에 넣고 가루로 만들어 유골함에 넣어 줬다.

 

유골함은 아버지가 들고 할머니 영정사진은 아버지 아들이 들고 앞에 서서 걸으면 나머지 가족들이 뒤를 따라 걸었다.

 

할머니는 잔디장으로 모시게 되었다.

 

장례식장이 소유한 땅에 구역을 나눠서 조그마하게 구멍을 파고 거기에 고인의 유골을 쏟아부어 흙을 덮은 다음 잔디를 심는다고 한다.

 

여러 고인들의 유골이 묻힌 잔디밭이 되는 것이다.

 

그냥 자연장과는 다르게 장례식장 업체에서 관리를 하는 땅에 구획을 나누어서 잔디밭을 조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인들의 명패도 있고 어디쯤에 할머니 유골이 묻혔는지 가족들이 알 수 있다.

 

잔디장으로 할머니의 유골을 묻은 뒤에 다시 빈소로 돌아가서 탈상을 진행했다.

 

원래 탈상은 3년상을 지낸 뒤에 하는 것인데, 근대에 와서는 삼우제 혹은 49제를 지내고 하는 걸로 바뀌었고 그마저도 간소화 추세로 발인 한 당일에 조기 탈상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탈상제를 지낸 뒤 상복을 벗었고 그걸로 모든 장례절차는 끝이 났다.

 

할아버지 장례식 때는 많은 조문객들로 인해 음식 서빙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이번 할머니 장례식은 코로나19 때문에 조문객이 적어서 빈소에 가만히 앉아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참 많았다.

 

그리고 장례절차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많았다.

 

여자는 오른쪽 상주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그런 것?

 

조문객이 오면 위로를 받고 맞절을 하는 게 오른쪽 상주 자리에 서있는 남자들이다.

 

내가 할머니의 손녀인데, 나는 오른쪽 상주 자리에 못 서고 우리 할머니와 유대관계가 전혀 없는 라마(남편)는 오른쪽 상주 자리에 서서 조문객과 맞절을 하고 있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그림이었다.

 

그놈의 유교사상... 

 

하지만 많은 곳에서 아직 유교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므로, 처음 가면 어버버 거리기 쉬운 문상 방법을 기록해보려 한다. (둘째 날 라마가 빈소에 와서 문상할 때 어버버 거렸다...;;)

 

 

 

< 유교 장례식 문상(조문) 방법 >

*경상남도의 경우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음.

 

1. 옷은 검은색과 무채색 베이스로 단정하게 입고 간다. 검은 양말을 신으면 좋고 화려한 액세서리는 하지 않는다.

 

2. 부의금 봉투는 보통 장례식장에서 준비하여 빈소 입구에 구비해두니 부의금을 들고 갔다면 봉투에 넣고 봉투 뒷면에 자신의 이름과 관계 등을 쓴다. (입구에 방명록이 있으면 작성한다.)

 

3. 부의금은 일단 재킷 안쪽 주머니나 가방 등에 넣고 빈소로 들어간다.

 

 

 

4. 빈소에 들어가면 오른쪽 상주 자리에 남자들이 서있고 왼쪽에 여자들이 서있는데, 아는 얼굴이라고 인사하지 말고 혹시 눈이 마주쳤다면 보일듯 말듯 아주 살짝 목례 후 곧바로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며 가운데 펼쳐져있는 돗자리 위로 올라간다. (여러 명이 함께 간 경우 대표로 한 사람만 돗자리 위로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둘레에 서있는다.)

 

5. 그러면 상주가 다가와 술 한 잔 올리시겠냐 묻거나, 묻지 않고 곧바로 제사상 위에 올려진 술잔을 들어 잔 안에 있던 술을 그릇에 부어 비우는데, 그때 돗자리 위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을 준비를 한다. 

 

6. 술잔을 받아 들면 상주가 술을 따라준다. 술이 담긴 술잔을 두 손으로 잡고 향 위로 들어 올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세 번 원을 그려주면 보통은 그 술잔을 다시 상주가 받아 들고 제사상 위에 올려준다. (상주가 안 받아줄 경우 일어서서 직접 제사상 위에 올리면 된다.)

 

7. 제사상 위에 술잔이 올라가면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한 두 걸음 물러선 뒤에 영정을 향해 절을 두 번 하고 마지막에 살짝 고개를 숙여 반배를 한다. (함께 간 사람들도 이때 같이 두 번 절하고 반배를 한다. /  절을 할 때 남자는 오른손을 위로, 여자는 왼손이 위로 가게 포개어 절을 하는 게 예절이니 지키면 좋겠지만, 솔직히 안 지켜도 무방하다. / 여자도 남자들처럼 무릎을 꿇고 절하면 된다.)

 

8. 고인을 향한 인사가 끝났으면 오른쪽에 남자 상주들을 바라보고 맞절을 한 번 한다. (함께 간 사람들도 같이) 

 

9. 남자 상주들과 맞절이 끝나면 비로소 상주들에게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인사를 나눈다.

 

10. 뒤돌아 나오기 전에 잊지 말고 부의함에 부의금을 넣고 나온다.

 

11. 보통은 자신이 얼굴을 아는 상주가 따라 나와서 식사 자리로 안내를 하고 잠깐 담소를 나누곤 한다. 

 

#. 5번에 앞서 향로에 향이 많이 짧아져있는 상태라면 분향을 한 뒤에 술잔을 올려도 된다.

조문할 때 보통 분향을 한다고 하는데... 경상남도에서 내가 겪은 세 번의 장례식에선 모두들 분향을 하지 않고 술잔만 올렸다. 빈소가 실내인데 문상오는 조문객마다 향을 피워 올리면 빈소에 계속 앉아있을 상주들의 폐 건강에 매우 나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분향 대신 술을 올리는 문화가 개인적으로는 좀 더 나은 것 같다.

#. 상주가 슬픔이 깊어 5번과 6번 과정을 도와줄 상황이 아니면 직접 제삿상에서 술잔을 내리고 비운 뒤 다시 술을 채워 향불 위에 반시계방향 세 번 돌리고 제사상에 올리면 된다.

 

 


 

그리고 이번 할머니 장례식을 치르면서 알게 된 점도 몇 가지 기록해본다.

 

1. 흔히 치르는 3일장은 고인이 돌아가신 날을 첫째 날로 친다. 새벽 1시에 돌아가시든 밤 11시에 돌아가시든 돌아가신 그 날짜가 3일장의 첫째 날이다.

 

2. 사망진단서(사체검안서)는 여러 장 받아두면 좋다. 사망신고 및 장례식장과 화장터에 제출하는 것 외에도 장례식에 참여하는 가족과 친인척들이 각각 직장이나 학교에 제출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3.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씻으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다.  "슬프면 씻을 정신이 없다 = 씻을 정신이 있으면 그만큼 슬프지 않다" 라는 식의 생각 방식으로 나온 얘기 같은데... 딱히 안 지켜도 된다. 우리는 양치하고 세수하고 발 씻고 다 했다.(상복은 벗으면 안 된다.)

 

4. 장례 시작하면서 향로에 향을 피우고, 향이 짧아지면 향을 하나씩 추가하여 장례 끝날 때까지 향불을 꺼트리지 않는다. 밤에도 상주들이 번갈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향을 계속 피운다. 

 

5. 빈소에서 남자 상주는 오른쪽에, 여자 상주는 왼쪽에 선다. 조문객과 맞절을 하는 것은 오른쪽에 선 남자 상주들 뿐이다. (다시금 생각해보니 조문객과 맞절을 하지 않아서 여자들은 무릎에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6. 조문객이 오면 상주들이 '아이고, 아이고'라고 곡을 하는 거라고 장례식장 직원분이 알려줬다. 처음엔 무슨 주문을 외는 것 같아서 엄청 어색했는데, 고인께 말을 거는 방법이 곡을 하는 것이고 손님이 방문하셨으니 곡을 해서 알려드리는 거라는 추가 설명을 들은 뒤엔 그냥 담담하게 곡을 했다.

 

7. 장례식장엔 보통 빈소 안쪽에 유가족을 위한 작은 휴식공간이 있기는 하나 침구류는 제공되지 않는다. 요즘은 유가족을 위해 침대가 있는 방이 따로 제공되기도 하지만 규모가 작은 건 마찬가지다. 상주로 참석하는 가족과 친인척이 많다면 각자가 사용할 이불과 작은 베개를 챙겨 가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딱딱한 장례식장 맨바닥에서 가져온 가방이나 팔을 베고 쪽잠을 자야 한다.

 

8. 고인을 위해 3일 동안 아침제와 저녁제를 올린다. 장례식장 직원이 시간이 되면 찾아와서 제를 진행해주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것은 없었다.

 

9. 둘째 날 오전 중으로 입관식을 진행한다. 고인에게 노잣돈을 드리고 싶으면 입관식을 진행하러 장소를 이동하기 전에 미리 챙겨서 간다. 노잣돈 봉투는 입관하는 장소에서 직원이 준비해두고 있다. (현금으로 드린 노잣돈은 보통 장례식장 직원들이 가져가는게 관례처럼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는 고인의 저승 가시는 길 자금으로 드리는 거지만 사실상 장례를 진행하시는 분들께 고인을 마지막까지 잘 좀 모셔달라고 부탁하는 의미도 포함된다)

 

10. 둘째 날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조문객들의 문상이 이어진다. 조문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면 음식을 담고 서빙할 일손이 필요한데,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주방 도우미 분들을 고용해야 한다. 주방 도우미 분들은 장례식장 직원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소개해주는 일용직 근로자이시다. 

 

11. 둘째 날 저녁 6~7시 쯤에 마지막으로 주문할 음식 접수를 받기 때문에 밤에 올 조문객의 수를 대충 알아야 한다.
부족해서 손님께 대접 못하느니 남는거 싸가는게 나으므로 넉넉히 주문한다.

 

12. 음식이 정말 많이 버려진다... 버려지는 일회용품도 어마어마하다...

 

13. 둘째 날 밤늦게 장례식장 직원이 와서 정산하게 될 장례비용을 미리 알려준다. 실제 장례비용 결제는 셋째 날 아침 발인하기 전에 한다.

 

14. 둘째 날 자정쯤에 더 이상 올 조문객이 없다 싶으면 부의함을 열고 부의금 정리를 한다.

 

15. 셋째 날 발인은 보통 아침 일찍 진행된다. 화장시설이 가까우면 절약된 이동시간만큼 발인 시간이 조금 늦춰지는 것 같다.

 

16. 고인을 화장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시간 20분 ~ 2시간이다.

 

17. 화장 후 남은 유골을 분쇄하여 모은 양은 두 손 모아 한가득 정도의 느낌이었다. (우리 할머니의 경우이므로 성인 남성이면 좀 더 양이 많을 것이다)

 

18. 우리 가족의 경우 오전 8시 반에 발인해서 화장 후 잔디장과 탈상까지 진행하고 짐 정리를 마친 시간은 오전 11시 반 정도였다. (장례식장과 화장시설, 잔디장 자리까지 모두 한 장소에 있는 곳이었음)

 

19. 장례식이 끝나고 한숨 돌린 뒤 문상을 와주셨던 자기의 손님들에게 감사했다는 인사를 다시금 돌리는 게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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